한국 축구의 한 획을 그었던 히딩크 감독이 처음 부임했을 때, 선수들은 큰 희망을 가지고, 어떤 신기술들을 훈련하게 될까 내심 기대도 컸을 것이다. 그런데, 감독은 선수들에게 기초 체력 훈련을 혹독하게 시켰다고 한다. 쓰지 않던 잔 근육까지 다지는 것을 화려한 신기술 훈련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리라.

내가 가르친 학생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다. 독해를 기가 막히게 잘했다. 어떤 지문을 읽어도 틀리는 문제가 거의 없었다. 실전 시험에서도 같은 점수를 받아 원하는 대학으로 진학했다. 고득점 독해 비결을 물어봤다.

지문을 읽기 전에 미리 문제부터 보고 하나씩 찾아서 푸는 지, 아니면 지문 읽은 다음에 문제 푸는지.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냥 (지문을) 읽어요. I just read it.”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지문을 읽고, 문제들을 푼다는 모범생 정답을 제시했다. 공부하는 양도 어마 무시했고, 집중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실전 SAT 시험 직전에 이 학생이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시험에 임할 수 있도록, 나름 어려운 단어 문제를 모아 풀게 했는데, 어떤 단어를 줘도 정확한 정의를 거의 완벽하리만큼 꽤 뚫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냥 지문을 읽어도 막힘 없이 술술 풀리는 거였다. 독해의 해법을 터득한 제자였다.

SAT 영어 독해의 관건은 단어다. 쉬워 보이는 지문이지만, 문제의 보기에서 제시되는 
단어들은 지문에서 보다 더 수준 높고, 모든 단서를 쥐고 있는 유형의 문제들이 많아졌다. 지문 속 단어는 평이한Support (후원하다)이지만,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더 적절한 단어는 Substantiate (증거를 제시하며 입증해 내다)인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결국 쉬운 지문을 이해했다 하더라도 객관식 보기에서 주어지는 난이도 높은 단어의 뜻을 몰라서 답을 찾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유학 준비 첫 해에는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아서 한군데도 지원하지 못했다. 같이 공부한 친구들은 원하는 곳 합격증을 받았는데, 어째 나만 제자리인 듯 했다. 하루에 단어 500개를 정해서 외우고, 각자가 안 외워지는 단어를 쪽지 시험 문제를 만들어 상대방에게 주고 쪽지 시험을 봤다. 나는 무슨 배짱인지 전혀 외우지 않고 매번 시험만 봤더니,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하루는 나에게 이런 말까지 한다.

“서 재진씨는 Picky 해 (까다로워). 자기가 좋아하는 단어 뜻만 쓰거든!”

그러자, 다른 친구는 한술 더 떠서 이렇게 장난을 쳤다.

“아니, 서 재진씨는 투명 펜으로 단어 뜻을 쓰는 거야. 본인만 볼 수 있게!”

그렇게 나만 남고 다들 떠났다. 그 중 나와 동갑인 친구가 Princeton 대학에 화학 박사과정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우울한 성탄절 전날, 나 혼자 학원 자습 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나를 찾아 오겠다고 한다. 내 모습이 비참할 것 같으니 오지 말라고 했지만 손 편지를 써서 기어이 나를 만나러 왔다. 

“재진아, 내가 일년 먼저 가서 터 닦아 놓을 테니 내년에는 꼭 네가 원하는 코넬에 가서 중간 지점 맨하튼 뉴욕 ‘감미목’ 한인 식당에서 설렁탕 같이 먹자! 네가 간절히 바래도 이뤄지지 않았다면, 그건 네가 덜 간절했기 때문이야.”

그 편지를 건네주고는, 더욱 기막힌 제안을 했다. 전액 장학금 합격증을 들고 매일 춤 추러 다녀도 모자랄 판에, 내가 공부하는 학원에 매일 아침 8시까지 와서 나와 같이 단어를 외우겠다고 했다. 유학 나가기 전에 다시 한번 단어 공부 해야 할 것 같다고 하면서.

단어 공부 계획은 이러했다.

단어집을 하나 정해 놓고, 2주 안에 다 외우기로 했다. 책 한권 당 총 80 여개의 퀴즈가 있고, 각 퀴즈 당 대략 20개의 단어가 있는데 2주 안에 책을 끝내려면, 주말 변수를 고려해서, 하루에 대략 7개의 퀴즈, 단어로는 140개 정도를 암기해야 한다. 

7개 퀴즈를 공부하면서 모르는 단어를 써서 상대방을 위한 퀴즈를 내고 바꿔서 채점을 했다. 학원 구석 의자에 앉아 그때부터 얼굴에 철판을 넉넉히 깔고 말도 안되는 콩글리쉬를 하며 오늘 외운 단어를 섞어가며 회화 연습도 했다.

책 한권을 다 외우고 나면 시간을 절반으로 줄인 일주일 안에 그 단어집을 다시 외운다. 퀴즈 14개씩 외우는데, 처음 7개 외울 때와 공부하는 시간은 같다. 이미 아는 단어들이 절반이라 모르는 단어만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 다음은 3일 동안, 책 한권을 다 외우는 것으로 계획을 세운다. 

참으로 희한한 것은 내가 잘 안 외워지는 단어를 그 친구도 못 외워서 틀리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음 단어 책으로 넘어가며 반복했다. 그렇게 대략 6번 이상을 알파벳 순으로 훑고 나니 독해에 자신감이 붙었다. 알고 있는 단어만 열거해도 전체적인 의미를 파악하는데 훨씬 수월했다.

결국 이런 난해한 단어들에 대한 통계 자료를 가지고 있는 시험 출제위원들이 정답 확률이 적은 단어들로 독해 문제의 난이도를 조절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영어 독해, 심지어 SAT Writing and Language 문법 문제도 문맥에 맞는 단어를 찾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천성적으로 단어 외우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들도 더러 있다. 대개는 옆 집 아이들이지 내 경우는 그렇지 않다. 

나에게는 내가 흔들리고 방황할 때 나를 잡아준 고마운 친구가 있었다. 고행일 수 있는 공부가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읊조리며 함께 갈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을 것이다.

다음 칼럼에서는 칼리지 에플리케이션 에세이 준비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 본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서재진 대표
코넬대학원 식품 영양학 석사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 보건학 석사
현) Suh Academy 대표 (미국 버지니아, Fairfax County)

Copyright © The Herald Insight, All rights reseverd.